1. 프로필
대한민국大韓民國Republic of Korea : 일본국日本国Japan
2. 개요
문자 그대로는 한국과 일본의 전쟁, 대개 한국과 일본의 스포츠 더비 매치를 일컫는 말이다.
제아무리 비인기 스포츠 종목이라고 해도 한일전이라면 사람들의 관심이 대폭 증가하는 버프가 있다.
단두대 매치의 예로 거론될 정도다.
한국은 말할 것도 없고, 일본에서도 관심이 많아서 특히 축구나 야구같은 열기가 높은 스포츠 종목은 한일전의 평균 시청률이 30% 정도는 우습게 넘어간다.
일본은 지상파 TV 채널 수가 한국보다 많다는 점을 생각하면 상당한 수치며, 양국의 방송사 및 스폰서들은 한일전 매치가 잡히기를 항상 손꼽아 기다린다.
경기가 열리면 네이버와 야후 재팬 양쪽에서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 떠오르고, 끝난 뒤에는 다음 날 양국 스포츠뉴스 1면을 장식한다.
해당 경기에서 뛰는 선수와 코치, 감독들의 경우도 굉장한 부담감을 갖게 되는데 협회장부터 구단주, 스폰서, 시민들까지 모두 관심을 갖기 때문에 이 경기의 승패가 자신들의 명성과 커리어에서 아주 상당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일전에 출전하는 선수들은 어떤 스포츠 종목에서든지 약한 전력이라고 평가해도 수십 배 이상으로 어마어마한 힘을 낼 수 있는 아주아주아주아주 강력한 동기부여가 된다.
우스갯소리로, "한일전에서 승리하면 10번 이긴 거나 마찬가지다.
" 같은 농담도 있다.
한일전에서 좋은 성과를 내면, 그동안 아무리 성적이 부진했던 선수라도 구국의 영웅 취급 같은 대스타로 떠오르고 언론의 주목을 받는다.
그 이름이 기억되지만, 실수하거나 패배하면 그야말로 '나라를 팔아먹은 역적'경술국적이 되면서 인터넷상에서 이름 석 자가 쌍욕을 먹고 내부에서도 눈칫밥을 얻어먹게 된다.
특히, 축구나 야구 같은 메이저 스포츠의 경우 한일전의 패배는 바로 감독의 경질 여론까지 나올 수도 있다.
하다 못해, 인터넷상의 찌질이들끼리의 키배라도 한일전 양상이 되면 이목이 집중된다.
디시인사이드와 5ch의 1차, 2차 사이버 전쟁처럼, 한국의 경우 한일전에서 이기면 다른 나라와의 경기와는 다르게 '대첩'이라고 부를 때가 종종 있다.
대한민국에서는 '한일전'이라 부르고, 일본에서는 '닛칸센(일한전)'이라고 부른다.
2002 한일 월드컵도 한국에서 '한일 월드컵'이라고 하지만 일본에서는 '일한 월드컵'이라고 부르는데 나 먼저 원리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다.
한일전의 중요성을 만화 하나로 잘 나타낸 와탕카. 여기서 나오는 긴가메 공화국은 가상의 국가이다.
영국의 언론 가디언은 가장 치열한 10대 국가대표 축구 더비 중 하나로 선정했다.
2018년 9월 1일에 2018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안 게임에서 남자 정구, 남자 축구, 남자 야구 종목이 같은 날 시차를 두고 한일전 결승전이 치러졌으며 여자 배구에서도 한일전 동메달 결정전은 모두 한국의 승리로 끝났다.
3. 설명
조석의 축구툰 중 한 컷.
"모든 팀에 다 이겨도 일본에 지면 전패고, 다른 나라에 다 져도 일본에 이기면 전승이다.
"- 김응용. 야구 대표팀 감독 시절의 발언.기사다.
"한일전은 가위바위보도 져선 안 된다잖아요."- 김원중. 삿포로 동계 아시안 게임에서 일본에 3:0으로 승리한 후 인터뷰에서.
"일장기가 우리 태극기 위에 올라가는 건 눈 뜨고는 볼 수 없다.
"- 김학범 감독이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안 게임에서 일본과의 결승전을 앞두고 대표팀 선수들에게 했던 말. 기사다.
다른 경기를 모두 지더라도 일본만 이기면 해피엔딩이다.
한국인: "딴 놈들에겐 져도 돼. 하지만, 일본만큼은 무조건 꺾어야 해!"일본인: "우린 그 반대다!"- 한국인들과 일본인들이 한일전을 생각하는 기본적인 자세.
대한민국과 일본의 숙명적인 경쟁 구도의 한일전은 그 어떤 경기보다도 가장 중요한 경기다.
대한민국이나 일본이나, 본래의 실력과 상관없이 무조건 승리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있다.
몇몇 언론 보도도 이에 동조한다.
전승을 했다가도 이 경기에서 패배하면 비난이 쏟아지며 패배의 원인이 된 선수는 역적, 매국노 취급을 받는다.
거기서 상황이 더욱 악화되면, 은퇴를 선언하거나 군대로 도망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어느 정도냐 하면 1997년 11월 1일 서울올림픽주경기장에서 열린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최종예선 일본전에서 그 전경기까지 5승 1무로 승승장구하여 월드컵 본선 진출을 확정지은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0:2로 패하자 이날 KBS 뉴스 9에서 기자가 "한국축구 치욕의 날이었습니다.
"하고 일갈했을 정도였다.
또한 이날 MBC 뉴스데스크에서 권재홍 앵커는 "오늘 하루 종일 온 마음을 잠실벌에 묶어 두었던 온 국민들에게 큰 죄를 진 것입니다.
"라며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을 꼬집었다.
가령, 월드컵이나 올림픽같은 세계무대에서 우리가 목표로 한 월드컵 16강 이상이나 올림픽 메달 등을 확보했다 하더라도 그 토너먼트 상대가 한일전이 된다면 그게 16강이 됐든 결승이 됐든 절대 져서는 안 되는 경기가 된다.
그 대회에서 아무리 좋은 성적이 나온다 하더라도, 한일전에서 패한다면 대한민국의 입장이나 일본의 입장에서 모두 결코 졌지만 잘싸웠다 라는 말을 들을 수가 없다.
반면, 다른 경기는 부진해도 한일전에서 승리하면 (심지어 메달을 따지 못해 곧 군대에 입대하게 되어도) "그래도 일본은 이겼으니까 됐다.
"라고 까임방지권을 받게 된다.
사실 한일전은 당연히 1920~1930년대 일제강점기 시절에도 경쟁심이 애들 장난 수준이 아니었다.
특히 축구에서는 더더욱 그랬는데 한국인 선수들이 주축인 팀이 일본인이 주축인 팀이랑 맞붙으면 무슨 독립군 전투가 벌어질 지경이었다.
일본 선수들에게 거친 플레이를 벌여 일본 선수들이 실려나갈 정도였다고 한다.
사실, 식민지 시절의 국가들은 대부분 이렇다.
인도만 해도 크리켓에서 영국이랑 사생결단 경기를 벌여서 이긴 실화가 인도에서도 영화로 나온 바가 있으며 인도네시아는 지금도 네덜란드와 축구 경기를 하면 역시 사생결단으로 경기를 한다.
결국 네덜란드는 인도네시아 팀이랑 경기를 금지할 정도였다.
남성잡지 맥심에서는 스포츠에서 가장 보기 싫은 이벤트로 일본전 패배를 꼽았다.
그래서 대표팀은 무조건 일본을 이겨야 한다!라고 하지만 실상 한일전에서 대한민국이 지금처럼의 승률을 자랑하는 것도 얼마 되지는 않는다.
그래도 1980년대 후반까지 축구, 농구, 양궁 정도 제외하면 한일전에서의 대한민국의 승률은 높지 않았다.
심지어, 지금은 대한민국이 압도적인 실력을 자랑하는 쇼트트랙도 1990년대 초반까지는 열세로 밀렸던 적도 있었다.
물론, 반대 케이스로 1990년대까진 일본에게 앞서다가 2000년대에 들어설때쯤 부터 상대전적이 열세로 돌아선 여자배구의 사례도 있지만 드문 편이다.
실제로 1970-1980년대 초중반까지는 한일전보다 남북한의 남북대결 매치가 국민정서상 관심이 많았고 승패에 연연하며 피를 말리게 했던 경기였다.
물론 여기에는 1960~1980년대의 남북한의 라이벌 정서가 심했던 사회적 시대적 측면이 많이 반영돼서이기도 했다.
아무래도 일본도 일본이지만 반공 정서의식이 강한 시대였고 당시엔 경제력 면에서도 비교가 의미가 없을 정도로 일본의 압도적인 우위였기 때문에 한국 입장에선 북한이 더 위협적으로 다가와서였다.
과거 1960년대 북한 축구가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8강에 오르며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하자 이에 열등의식을 느낀 당시 대한민국 정부가 정부 주도하에 북한만을 꺾기 위해 뛴다는 양지 축구팀을 정보부 산하에 만들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실제로 해당 국가의 종합적인 스포츠 실력 수준이 어디까지 인가를 살펴보는 척도로 대표적인 우리가 잘 아는 올림픽을 꼽을 수 있다.
올림픽에서의 메달 순위와 금, 은, 동메달의 분포도 등을 따져보면 해당 국가의 전체적인 종합 스포츠 실력을 대충 가늠해 볼 수 있는데 과거 일본이 6.25 전쟁 이후(그 이전은 전범국이라 참전제한, 2차대전으로 참전안함 등으로 제외) 1960년대(1964년도엔 개최국으로서 좋은 성적 물론 홈 어드벤티지 감안)와 특히 일본의 버블 경기가 올라가며 일본의 고도 경제 성장시기였던 1970~1980년대에는 일본의 메달순위는 거의 대부분 한국보다 앞서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이후 1990년대 들어 일본의 잃어버린 10년 버블경제 붕괴 등 국가경제력이 악재를 달리며 스포츠 수준도 그에 비례해 추락해 올림픽 메달 종합 순위에서 대한민국에 역전당하고 밀리게 되었다.
실제로 관련 분야(스포츠와 경제) 전문가들의 말을 들어보면 "해당국가의 국력(경제력을 바탕으로 나머지들)과 스포츠 실력은 비례하는 측면이 있다"라고 하는데 그것이 그대로 시기별로 반영된 것이라 보면 되겠다.
물론, 올림픽이라는 여러 종목을 통틀어 종합적인 스포츠 실력이 세부적으로 개별 종목 단위에서 따져본다면 국력에 비례하지 않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일반적으로 경제력 = 스포츠성적 이렇게 연계성이 있다는 것이고 무조건 100% 예외가 없다는 건 아니니까 말이다.
예를 들자면, 축구에서는 한국보다 경제력이 약한 아프리카권 국가도 상대적으로 부유한 아시아권 국가보다 실력이 좋은 경우가 많다.
그리고, 마라톤에서는 아시아권 국가들보다 아프리카권 국가들이 대체로 좋은 성적을 유지한다.
이러한 분위기를 선수들도 잘 알고 있는 지라, 다른 때 같으면 해외에서 경기를 치르고 귀국할 때 공항에서(크게 털린 경우가 아니면) 평범한 모습으로 기자들을 맞이하지만, 유독 한일전에서 일본에게 지고 돌아오는 경우라면 고개를 푹 숙이고 어두운 얼굴로 기자들을 맞이한다.
불쌍해보여야만 국민들에게 덜 까이니까 멀이다.
양국 사람(네티즌)들 대부분은 막상 한일전이 벌어지기 전에는 '실력도 없고 상대도 안 되는 것들이니까 신경 따위 쓸 필요도 없다.
'며 서로 안중에도 없는 척, 쿨한 척을 한다.
하지만 한일전이 시작되면 미친듯이 응원을 한다.
그리고 패배한 나라의 국민들은 모든 것을 잃은듯이 허탈감에 빠진다.
역사상 최초의 한일전은 1945년 8.15 광복 이후, 1953년에 있었던 1954 FIFA 월드컵 스위스 아시아 예선전이었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출정식을 하는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에 일본에 패하면 대한해협에 빠져서 죽으라고까지 했다고 한다.
결국, 첫 한일전은 5:1로 압도적으로 대승했고, 이어서 일본에서 또 벌어진 2차전에서는 2:2로 무승부를 이끌어내서 대한민국 최초 월드컵 본선 진출(+아시아 독립국가 최초 본선 진출)의 쾌거를 이뤄낸다.
해방이 된 지 10년이 되었던 즈음이라 국민들은 승전보에 더욱 기뻐하였는데, 무엇보다도 일본에 35년간 식민 지배를 당했던 아픈 기억 때문에 경기에서 압승했으며 민족의 자존심을 지켜냈다는 것에 환호를 보냈다.
4. 왜 이렇게 열기를 뿜는가?
원교근공(遠交近攻)이라는 말대로 이웃나라와 사이좋은 나라는 세계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고, 한일관계 역시 이웃나라라서 서로 부딪칠 일이 많다.
과거의 역사나 정치적인 문제를 파고들면, 또 여러모로 복잡해지기 때문에 양국 사람이 괜히 그런 이야기를 했다가는 싸우기도 딱 좋을 만큼 서로 그 점에 대해서는 민감하다.
이런 감정이 간접적으로 표출되는 것이 바로 한일전이다.
어느 정도는 직접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 이러한 근본적인 요인은 주변 국가 중에서 한국과 일본만큼 스포츠에서 라이벌 관계를 이룰 나라가 없어서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기껏해야 중국, 몽골, 대만, 북한 정도인데, 한국 및 일본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나라는 중국뿐이다.
그나마도 과거에는 중국의 스포츠 실력이 좋지 않았던 데다가 중국은 전통적으로 축구나 야구 같은 구기종목보다는 탁구나 체조, 역도 등의 인구로 밀어붙이는 개인 스포츠에서 강세를 보이기 때문에 임팩트가 그리 크지 않다.
그나마 탁구가 한 때 한중전으로 주목받기도 했지만 중국의 독주로 사라졌다.
대표적인 예로는 축구에서 중국이 한국을 만나면 매번 무승부 내지 패배를 기록하는 공한증을 들 수 있다.
만약 중국이 과거에 스포츠(특히 팀 스포츠)를 조금 더 잘했더라면 한중전, 중일전이 한일전만큼 성장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물론, 농구와 바둑처럼 한중전이 더 재밌는 종목도 있긴 하다.
중일전이 재밌는 경우는 배구.2000년대 초중반 한류 열풍의 영향이 일본으로 넘어가고 특히 중반 중후반 들어 문화 경제적으로도 일본 내에서 한국의 영향력이 커져가고 야구 등에서 일본이 메이저리거까지 총동원한 대표팀이 몇 번이나 한국에게 무너지면서 특히 일본 쪽에서는 이미 한국을 야구→모든 스포츠 종목을 경쟁 상대로 한일전이 주목을 받는 요소가 된 지 오래다.
특히, 2010년대부터는 일반 뉴스 등에서도 여전히 한일전은 국내 스포츠를 대표하는 최고의 관심사이며 말 그대로 전쟁터에 나가는 군인들처럼 아주 치열하고 사생결단의 무대다.
프리미어 12는 예선전에 일본은 전승을 거두고 대회 자체에 국민들 관심도 상당했다.
하지만 4강에서 한국에게 충격적인 역전패를 당한 뒤 고쿠보 감독은 인신공격까지 당하면서 어마어마한 비난 속에 차기 대회를 지켜나가야 했다.
일본에서도 한일전의 실패가 주목받는 것은 2012년 런던 올림픽의 카디프 대첩에서 말 그대로 4위라는 멕시코 올림픽 이후 최고의 성적을 올렸고, 스페인까지 격파시켰음에도 불구하고 고작 한국에게 패배했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귀국 현장에 나와있던 기자는 겨우 4명 정도였다고 한다.
그래서 요시다 마야는 이런 행태에 상당히 서러운 감정을 토로했는데, "일본의 올림픽 도전 중에 상당히 좋은 성적을 올렸다.
그런데 아무도 축하해주지 않는다.
"라고 푸념했을 정도였다.
요시다 마야의 저 발언이 틀린 말은 아닌 것이, 일본은 2000년 시드니 올림픽 8강 이후로, 조별리그에서 승리조차도 런던까지 하지 못했었다.
리우 올림픽에서도 나중에 1승은 했지만 한일전 패배로 인해 모든 것이 끝난 상황이라 별다른 소득이 없었다.
그것도 토너먼트 준결승까지 진출했는데도 그저 한일전을 패배했다는 이유로 그냥 욕만 먹었다.
5. 축구
일반적으로 '한일전'이라고 하면 양국간의 축구 국가대표 경기를 쉽게 떠올리는데 역대 전적은 한국이 일본보다 더 앞서는 편이다.
역대 전적만 봐도 한국이 훨씬 압도적이고, 1990년대~2000년대 이전만 해도 한국에게 일본은 전혀 상대도 되지 못했다.
한국축구의 레전드이자 슈퍼스타 차범근, 최순호가 활약하던 시기였던 1970~80년대에는 일본의 눈 앞에서 한국이 언제나 아시아권의 최종보스로 군림했던 시대라 항상 쪽도 못 쓰고 깨지면서 상대도 되지 못했다.
그야말로 일본은 언제나 한국의 밥이었고, 승점자판기였다.
물론, 더 윗세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최정민이나 이회택처럼 기라성같은 대형 공격수들이 활약하던 시기에도 마찬가지였다.
정확히 말하면 일본축구는 미우라 이후 세대와 전세대로 나누는데 미우라 전 세대는 한국의 장난감이라면 미우라 이후 세대는 한국과 비슷한 축구실력을 유지하다가 2010년대부터 한국보다 앞서나가는 실정이다.
한일전축구의 상대전적의 한국우위는 대부분 미우라 이전 세대의 결과물이고 이후세대는 오히려 메이저 대회 예선(월드컵), 본선(아시안컵)만 놓고 따지면 일본이 2승 2무(아시안컵 승부차기 한국 2007년 3, 4위전 1승 2011년 준결승1패) 1패로 한국을 앞서고 있다.
심지어 1994년 미국 월드컵 최종예선 한일전에서 한국을 1:0으로 승리했지만, 이라크에 경기 종료 30초 전에 통한의 동점골을 먹히면서 월드컵 본선진출권을 한국에게 넘겨 준 도하의 기적을 보면, 일본은 뒷목을 잡고 쓰러질 정도였다.
그래도, 최근에는 일본이 1993년 J리그를 야심차게 창설하면서 AFC 아시안컵 우승 횟수에서도 한국을 앞서게 되었으며, 한국 축구에 대한 연구와 엄청난 투자로 인해 어느덧 동아시아권에서 한국과 일본이 양강구도를 형성하게 되면서 경쟁이 더욱 치열하게 되었다.
한국이 축구에다가 돈을 많이 쓴다고들 하지만, 일본은 한국보다 축구와 관련된 예산을 2, 3배 정도는 우스울 정도로 더 많이 사용하면서도 여전히 한국을 쉽게 압도하지 못하고 있다.
물론, 항상 그래왔던 것은 아니고 일본이 국가 차원에서 전폭적으로 밀어줬던 종목은 그동안 야구가 압도적이었던 터라 축구는 만년 2인자였다.
최근에는 일본 국내에서 야구 열기가 좀 사그라들고 축구 열기도 많이 올라가긴 했지만, 금전적인 지원도 역시 생각하는 것처럼 압도적인 차이는 아니다.
더구나, 일본의 경우는 특히 1990년대 들어서 버블경제 붕괴의 여파로, 국가 경제력이 많이 후퇴하던 상황인지라 스포츠에 그리 많은 돈을 쓸 여력이 안되기도 했었지만 2010년대 이후 실력이 향상되기 시작했으며 최근에는 일본이 한국에 비해 객관적인 전력면에서 소폭 우위인 상황이다.
한일전 축구경기를 보면 알겠지만, 대체로 일본은 스피드 위주의 섬세한 패스축구에 유리하고, 한국은 우세한 피지컬을 바탕으로 하는 허슬 플레이와 롱볼 축구에 발달되었다.
사실, 2018년 현재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의 피지컬은 세계적으로 비교해봐도 평균 이상은 된다.
또한, 한국 국대의 평균 신장도 180cm 중반으로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 출전한 경쟁국가들과 비교해도 상위권에 속했다.
물론 축구는 피지컬로만 플레이하는 것은 아니지만 한국의 전통적인 전술 스타일이 이른바 적극적으로 몸싸움을 하는 압박축구와 뻥축구인데, 이게 한결같이 잘 통해서 계속 이기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
심지어 한국이 패배하는 경기에서도 저 킥 앤 러시나 롱볼패스 때문에 일본이 위기를 맞이하는 경우도 많이 있었다.
결국, 피지컬이 약해서 헤더로 공중전을 잘 따낼 선수들이 없다는 것과 수비수들의 역량이 부족한 것이 원인이다.
그나마 공중볼을 잘 막아줬던 선수는 일본의 레전드 야마구치 모토히로, 엔도 야스히토 정도였다.
요즘에는 불구대천의 원수 이란과의 악연이 깊어지고 월드컵 최종예선에서 한일전이 계속 무산된 덕분에 예전보다는 분위기가 좋아졌다.
물론, 어디까지나 피터지게 치고 받던 1990년대에 비해서 약간 좋아졌을 뿐이다.
여전히 한일전에서 패배하는 쪽은 나라를 잃은 것처럼 분노가 치솟고 기분까지 허탈해진다.
2010년대에는 대리 한일전이 이루어지기도 하였는데, 태국의 축구 국가대표 감독을 일본인 니시노 아키라가 맡게 되고, 베트남은 한국인 박항서가 맡게된 데다가, 이 국가들 또한 한일처럼 양국이 상당히 라이벌 의식을 가지고 있는 편이라 동남아, 국제 축구 대회에서 이들이 맞붙게 되면 예선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도 크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또 우연히도 베트남과 태국은 각각 한국과 일본과의 경제적 협력도가 높은 편이다.
2010년대 후반에서 2020년 초반은 국내파로만 출전하여 친선전에 가까운 동아시안컵이나 연령별 대표팀 외에는 만난 적은 없다.
두 팀 모두 상위 시드를 배정받아 월드컵 예선이나 아시안컵 본선 조별리그에서 다른 조에 배치받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A급 대표팀 경기는 양측 모두가 패배에 대한 여론이 악화되는 부담이 너무 크기 때문에 암묵적으로 서로가 꺼린다고 한다.
차라리 중동이나 동남아의 소국에게 어이없게 패배해서 욕먹는게 낫다고 느낄 정도로 한일전에서의 패배(3:0)는 선수들에게 그야말로 지옥을 맛보도록 해준다.
그리고 과거보다 유럽, 남미의 강팀들과의 A매치 협상도 쉬워진 터라 굳이 양측에게 큰 스트레스를 주는 한일전을 성사시킬 필요도 없긴 하다.
그리고 선수들간의 감정 문제도 예전보다 많이 좋아지긴 했다.
현재는 한일 선수들 모두 유럽 리그로 진출하는 사례가 늘어서 그곳에서 친구처럼 지내는 선수들이 많아졌고 일본 선수가 한국 선수를, 반대로 한국 선수가 일본 선수를 본받고 싶다는 인터뷰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다른 종목에 비해서 한일축구 선수들끼리의 감정은 비교적 좋은 편이다.
2021년 11월 기준으로 현재 한국과 일본의 초신성이자 유망주로 손꼽히는 이강인과 쿠보 다케후사는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에서 서로 같은 팀인 RCD 마요르카에서 활약하는 중이며 사이도 좋은 편이라고 한다.
6. 야구
야구는 두 번의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 쓴맛을 봤지만, 올림픽에선 2차례 목메달을 안겨준 전적이 있다.
1999년 시드니 올림픽 예선 부터는 아시안 게임을 제외한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프리미어 12, 올림픽 야구에는 베스트 라인업이 출전한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부터 2015년 까지 한일전에서 전력차가 난 상황에서 맞붙은 경기는 도하 참사 당시 일본의 사회인야구 선수들로 구성된 일본 국대에게 10대 7로 패배한 경기가 유일하다.
참고로, WBC의 대진이 이렇게 병맛스러운 이유는 "한일전이 돈이 가장 되니까."라는 설득력 있는 가설이 존재한다.
일본이 프로급 선수들로 꾸려서 본격적으로 맞붙은 2000년부터 2020년까지 20전 9승 11패로 한국이 근소한 차이로 뒤지고 있다.
라이벌이라 여겨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대등한 승부다.
일본이 이것을 당황스럽게 여기는 것은 프로야구 역사가 긴 일본이 30년이 갓 지난 한국 프로야구를 압도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각 리그를 씹어 먹을 정도면 MLB진출하게 되어 국가 대항전에 잘 안나와 어느정도 평준화가 이뤄지기도 하며, 리그의 최상급만 모아놓은 국가대표 수준은 어느 비등하다.
리그 평균을 따지면 그 격차는 현저히 차이 난다.
우리나라에서 리그를 씹어먹은 선수들이 일본리그 진출을 꿈꿀 정도로 일본리그의 수준은 KBO보다 휠씬 높은 편이다.
특히 팀의 부동의 1번타자이자 리그를 씹어먹던 선수가 일본에 진출 후 극도의 부진을 겪었으나 한국으로 돌아오자마자 다시 리그를 씹어먹던 선수가 됐던 것만 보아도 KBO와 NPB의 격차를 알 수 있다.
7. e스포츠
e스포츠의 경우, 일본과 한국이 주로 하는 게임이 달라서 그런지 많이 갈리는 편인데, 한국은 PC 게임 위주인 데 비해 일본은 콘솔 게임 위주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한, 일 양국에서 흥행하는 게임이 다르다.
물론 최근엔 PC 게임으로도 일본 게이머들이 많이 이동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한, 일 양국에서 흥행하는 게임은 다르다.
예를 들자면 Apex 레전드가 있는데, 일본은 꽤 흥행하는 수준을 넘어서 거의 국민 게임급 위상을 보여주고 있는데 한국에서의 인지도는 안 그래도 적은 유저풀에 핵 문제까지 겹치며 한섭이 폐쇄되고, PC방 순위에서 보기 힘들 정도이다.
슈팅게임을 포함한 오락실 게임의 경우 한국이 무난하게 진다.
이걸 대표하는 말이 "일본 동네 기록이 전한기록". 대전격투 게임의 경우 e스포츠 씬이 기능하지 않는 고전게임의 경우 그쪽에서 인기있는 게임과 이쪽에서 인기있는 게임에 따라 우세가 천차만별로 갈리는지라, 비교는 거의 의미가 없는 편이고 활발하게 현역으로 대회가 돌아가는 게임은 세계적으로 인기많은 스트리트 파이터 시리즈를 포함해 전부 일본이 압도적이고 한국이 꽤 오랫동안 최강으로 군림했던 철권 시리즈 정도가 비등한 편이다.
예외적으로 버추어 파이터가 3시절 한국인 플레이어 두 명이 초청받아 세계 대회를 치른 적이 있다.
결과는 둘이서 모든 플레이어들을 쳐발라버리고 1, 2위를 나누어 먹었다.
덕분에 당연히 일본 선수가 우승하리라 생각했던 주관사 세가는 체면을 구겼고 한국 선수들의 인터뷰를 공식 비디오에서 통편집 및 분량 대부분을 일본 선수들의 선발전으로 채우는 등 등한시했고 계속적인 초청을 해준다는 약속과는 달리 다시는 세계대회를 열지 않았다.
이 여파로 버파는 한국에서 무관심 속에 잊혀졌다.
리듬게임의 경우 한국이 꽤 따라잡아서 KAC 2012 사운드 볼텍스 부스 부문, KAC 2013 유비트, 리플렉 비트 부문에서 한국인이 김사자 선생의 도움으로 챔피언 자리를 가져갔다.
게다가 The 4th KAC에서는 유비트 본선진출한 8명 중 5명이 한국인이고 DDR에다가 리플렉비트까지 우승에 성공. 참가하는 족족 최소 1종목은 우승자를 배출하는 중이다.
모바일 리듬 게임 중에서도 가끔 1등이 나오고 있는데, 아이돌 마스터 신데렐라 걸즈 스타라이트 스테이지의 경우 한국인 '무서운닭'이 피어라 Jewel 이벤트에서 1위를 기록한 적이 있고, 아이돌 마스터 밀리언 라이브! 시어터 데이즈의 경우 FairyTale로 남을 수는 없어 이벤트에서 한국인 '워프P'가 1위를 기록한 적이 있다.
PC 리듬게임으로 가면 한국인의 최상위권 등록 확률이 더 높아진다.
PC 게임의 경우는 일본에서는 최근엔 인기가 많아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 인기가 별로인 데 비해 한국에서는 압도적으로 인기가 많아서 PC게임 한일전은 서로 만나기조차 쉽지가 않아서 승부가 애초에 성사되지도 않는 경우가 많다.
세계 최강으로 군림하는 스타크래프트, 스타크래프트 2, 리그 오브 레전드까지 갈 것도 없이, 도타 2나 카운터 스트라이크 같이 한국에서 인지도가 낮은 종목들도 나름대로 강력한 데 비해 일본에서 카스는 그나마 SCARZ Absolute라는 팀이 있지만 한국의 MVP PK와 GOSU 두 팀에게 상대전적도 밀리고 있다.
도타 2에서는 프로게임단조차 없다.
심지어는 콘솔버전이 있는 오버워치도 마찬가지라 2018 오버워치 월드컵에서 e스포츠 최초로 국제대회에서 한일전이 성사되긴 했지만 올 셧아웃이라는 일방적인 결과로 끝났다.
그러나 최근 들어 리그 오브 레전드 종목에서 일본 팀의 실력이 늘어나더니 2018년에는 롤드컵에서 최초로 플레이-인 스테이지 2라운드 진출, 2019년에는 롤드컵에서 4대 메이저 리그 소속 팀에게 첫 승을 거두는 등 점점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2021년, 리그 오브 레전드의 국제대회인 2021 Mid-Season Invitational에서 LoL e스포츠 역사상 첫번째 클럽팀 간의 한일전이 성사되었다.
한국 대표팀은 당시 세계 최강이라 불렸던 담원 기아(약칭 DK), 일본 대표팀은 DetonatioN FocusMe(약칭 DFM)이었는데 결과는 한국 대표인 DK의 아슬아슬한 역전승. 그리고 가장 큰 국제대회인 2021 롤드컵에서는 플레이-인 스테이지에서 1위 결정전의 혈투 끝에 LCS 소속 팀 Cloud9을 꺾고 조 1위로 그룹 스테이지에 직행, LJL 최초 그룹 스테이지에 진출이라는 결과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렇게 올라온 DFM이 한국의 명문 팀 T1과 그룹 스테이지에서 같은 조가 되면서 두 번의 맞대결이 확정되었다.
1라운드에서의 결과는 한국 팀인 T1의 압도적인 승리. 또 2라운드에서도 다시 한 번 맞붙었는데 T1이 DFM의 미드인 아리아가 페이커를 솔킬 따는 등 초반에 DFM이 유리해지면서 조금 힘들었으나 결국 압도적인 운영 격차 등으로 초반에 힘들었던 것을 다 복구하면서 T1이 또 다시 승리를 챙겨간다.
또 이번 그룹스테이지에서 한국팀인 T1은 6전 5승 1패의 성적을 거두며 1위로 8강에 진출했지만 일본팀 DFM은 세계의 벽은 높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체감하며 6전 전패로 마감했다.
다만 여전히 일본에서 리그 오브 레전드를 플레이하는 인구가 너무 적어 일본 리그의 전체적인 수준은 여전히 한국 리그에 비해 매우 낮고, 그 동안의 일본이 국제 대회에서 거둔 성과는 일본 대표로 18년부터 출전했던 DFM의 고군분투라고도 볼 수도 있다.
그 예로 20년 롤드컵에서는 DFM이 자국 리그 서머시즌에서 우승을 못해 롤드컵에 나오지 못했고 대신 V3 Esports라는 다른 일본 팀이 대표로 나갔는데, 그 팀은 18년 이전의 일본 팀들과 다름없는 한심한 플레이를 연달아 보여주며 플레이-인 스테이지 1라운드에서 광탈했다.
게다가 그 DFM마저도 한국인 용병에 크게 의존을 하고 있기에 한국인 용병의 군 입대나 본국 리그인 LCK 이적 등 DFM을 이탈하는 일이 생긴다면 결국 일본 리그는 또다시 정체할 수밖에 없다.
스포츠 게임은 대부분 일본 성적이 더 좋다.
FIFA 시리즈에서는 만난 적이 없다지만 그래도 일본에선 꾸준히 세계대회 본선 진출자가 나오는데 한국은 씨가 완전히 말라버렸고, 위닝일레븐도 최근 하였던 아시안 게임 지역 예선에서 한국을 무난히 이기고 본선에 진출하였다.
배틀로얄의 경우 PUBG는 할 말이 없을 정도로 한국이 이기지만, 포트나이트는 FNCS 지역예선에 한국인이 안 보일정도로 일본이 압살한다.
APEX 레전드는 미묘한데, 2020년에 T1이 RAGE ASIA를 우승한 적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