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프로필
2. 개요
대한민국의 시중은행으로, 우리금융그룹 계열사이다.
2022년 현재 이원덕 전 우리금융지주 수석부사장이 우리은행장으로 임하고 있다.
3. 역사
- 1998년 이전의 역사는 한국상업은행과 한일은행 문서를 참조 바랍니다.
우리은행의 시초는 1899년 고종 황제의 내탕금으로 세워진 대한천일은행이다.
설립 초기 내실을 다지기 위해 명예직에 가깝긴 했지만 당시 황태자였던 영친왕이 제2대 은행장을 맡기도 했다.
대한천일은행은 경술국치 이후인 1911년 일본인의 투자를 받으면서 조선상업은행으로 개칭하였고,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인 1950년 한국상업은행으로 개칭했다.
한편 1932년 조선신탁주식회사라는 신탁회사가 설립되었고, 은행으로 전환 및 합병, 여러 차례의 개칭을 거쳐 1960년 한일은행이 출범했다.
상업은행과 한일은행은 유력 시중은행인 조상제한서의 일원으로 막강한 권위를 누려왔으나, 1997년 외환 위기가 닥치면서 기업 여신 비중이 높았던 두 은행은 뿌리채 흔들리게 되었다.
1998년 상업은행과 한일은행은 국제통화기금 지정 14개 부실은행에 들어가는 불명예를 안았고, 자구책을 마련하여 가까스로 대한민국 제1차 금융 구조조정에 따른 퇴출 처분을 피할 수 있었다.
퇴출 사태 직후인 1998년 7월, 양 은행은 합병을 발표하여 1999년 한빛은행이 출범하였다.
당시 협상 결과에 따라 법인은 상업은행을, 비씨카드 회원 자격은 한일은행을 계승했으며, 이와 함께 공적자금 3조 2642원을 지원받아 국영화되었다.
당시 한빛은행은 국내 총자산 1위의 시중은행이었다.
2000년, 정부는 기존 주주들에게 은행 부실화의 책임을 물어 완전감자를 통해 기존 주식을 모두 소각했고, 한빛은행은 예금보험공사의 완전 자회사가 되었다.
2001년 똑같이 공적자금으로 인해 예금보험공사 자회사가 된 광주은행, 경남은행, 평화은행, 하나로종합금융과 함께 우리금융지주 산하로 편입되었다.
2002년 1월 평화은행을 합병하고 동년 5월 우리은행으로 개칭을 했다.
2004년 12월 은행권 최초로 북한의 개성공단 내에 개성공단지점을 개점했다.
환전이나 K-Cash 업무를 볼 수 있고 나름 해외 지점이라고 현지인 직원을 채용했다고 하는데 개성공단의 특성상 달러로 거래하는 지점이다.
2014년, 민영화 과정에서 지방은행과 비은행 금융사들을 매각한 우리금융지주를 합병하였다.
2015년 4월 은행권 최초로 '인터넷 전용 방카슈랑스 상품'을 판매했다.
2015년 5월 은행권 최초로 모바일 전문은행 위비뱅크(Wibee Bank)를 설립하였다.
설립의 주된 목적은 인터넷전문은행 설립에 앞서 운영경험 축적과 수익모델 검증을 위함이며 위비톡이라는 우리은행 특화 메신저 앱을 내놓았다.
2016년 2월 갑작스러운 개성공단 폐쇄 조치에 따른 북한의 기습적인 퇴거 조치로 인해 개성공단지점 업무를 회현동1가 본점 내 임시 점포에서 본다고 한다.
2016년 11월 예금보험공사의 우리은행 지분 29.7%를 민간 금융회사들에 분할 매각하여 1차 민영화에 성공하였다.
2016년 12월 회현동1가 본점에서 위비 스마트 KIOSK를 시연했다.
이후 서울/인천/경기(고양, 용인, 성남, 안양) 지역 일부 지점의 ATM 옆에 위비 스마트 KIOSK를 설치하여 입출금통장 비대면 개설, 체크카드 발급 등 몇몇 스마트 서비스를 시행했다.
단, 키오스크에서 개설 가능한 입출금상품은 우리 SUPER 주거래 통장, 우리꿀청춘통장, 우리직장인재테크통장뿐이며, 이들을 개설한 후 인터넷뱅킹에서 다른 상품으로 전환가입은 가능하나 얄짤없이 한도제한 계좌로 나온다.
아직 수도권 외 지역 지점에 키오스크를 확대할 것에 대해서는 계획이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2017년 4월 공식 출범한 케이뱅크의 대주주로 참여하였다.
케이뱅크는 본래 KT가 주도하는 인터넷전문은행이지만 금산분리 제도로 인해 우리은행으로부터 투자를 받았고 그 결과 우리은행이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이 영향을 받아 케이뱅크의 시스템도 우리은행이 운영하는 모바일 은행앱인 위비뱅크 for 우리은행의 시스템을 많이 참조해 만들어졌다.
2017년 9월 13일부터 케이뱅크와 제휴해 수수료 없이 ATM 사용이 가능하다.
2017년 6월 콜옵션을 행사한 과점주주들이 예보 소유 지분 2.94%를 추가로 인수하였다.
2017년 출시한 음성인식 AI뱅킹인 소리(SORI)와 로보어드바이저 우리로보알파 역시 국내 금융권 최초다.
2019년 1월 우리금융지주가 재설립되면서 포괄적 주식 교환을 통해 우리금융지주의 완전자회사로 편입되었다.
2019년 9월 보유중이던 우리카드와 우리종합금융 주식 전체를 우리금융지주에 매각했다.
2019년 10월 MBK파트너스의 롯데카드 인수에 컨소시엄으로 참여하며 롯데카드 지분 20%를 획득하였다.
2020년 11월 영업점 체계를 VG(Value Group) 중심으로 개편할 것을 발표했다.
840개의 지점 중 상위 117곳을 선정해 인근 5~6개 점포의 거점 역할을 맡는데 일각에서는 지점 통폐합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우리은행의 입장은 VG에서 여러 업무를 1번에 볼 수 있게 효율화하는 것이고 지점 통폐합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언론들은 2016년에 이루어진 타 은행의 개편과 비슷하다는 견해를 내고 있다.
VG점을 제외한 점포들에 창구를 없애고 자동화코너만 남기고 있다.
그 자동화코너도 타 은행처럼 점진적으로 철수하는 중이라 사실상 통폐합인 셈.2021년 1월 1일 한국산업은행과의 업무 제휴가 종료되었는데 2001년 5월 31일부터 한국산업은행과 업무 제휴를 맺어 한국산업은행의 통장과 카드를 우리은행에서 사용할 수 있었다.
4. 우리나라 첫 은행?
위 역사가 말해주듯 전신인 대한천일은행은 무려 19세기에 설립된 은행으로, 설립 120주년을 넘겼다.
이로 인해 우리은행은 한국상업은행 시절부터 우리나라 첫 은행이라는 구호를 내세워왔다.
하지만 천일은행 설립 2년 전인 1897년 이미 한성은행이 설립되어 운영 중이었고, 한성은행은 여러 차례 개칭과 합병을 통해 조흥은행-신한은행으로 이어지고 있다.
따라서 우리은행의 '우리나라 첫 은행' 구호는 엄밀히 말하면 허위광고이다.
하지만 상업-한빛-우리은행은 "한성은행은 1911년 조선총독부의 지원을 받아 관립 한성은행으로 개편했으므로 민족은행이 아니며, 대한제국 황실이 세운 우리은행이야말로 민족은행 중 최고령이다"라는 논리를 내세우며 조흥-신한은행의 최고령 은행 지위를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는 누워서 침 뱉기 격인 것이, 우리은행이 그토록 자랑하는 전신 대한천일은행도 1911년 한성은행과 똑같이 일본인의 투자를 받아 조선상업은행으로 재출범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대한천일은행과 조선상업은행이 별개가 아닌 것처럼, 1897년 세워진 한성은행 역시 관립 한성은행으로 성격만 변화한 것이며, 기존 한성은행이 관립화되어 존속한다는 당대의 관보가 지금까지도 남아있다.
이러한 주장으로 인해 2000년대까지 조흥은행과 앙숙관계였으나, 조흥은행이 신한금융그룹에 편입되고 2006년 통합 신한은행이 출범하며 우리은행의 '첫 은행' 주장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었다.
비록 조흥은행을 존속법인으로 정하였다지만 신한은행의 경영진 대부분은 구 신한은행 출신이었고, 이들 경영진은 역합병으로 역사를 주워먹은 입장이다보니 한국 최고령 은행으로 홍보하는 것을 꺼렸다.
이에 따라 우리은행은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우리나라 첫 은행'이라는 구호를 거리낌없이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2021년 우리금융그룹 통합 캐치프레이즈인 '우리 마음 속 첫번째 금융'이 발표되었고, '우리나라 첫 은행' 슬로건은 해당 캐치프레이즈로 빠르게 대체되고 있다.
5. 행가
6. 지배구조
2019년 8월 기준.
7. 역대 은행장
※ 한빛은행 시절 은행장은 한빛은행 문서 참고.
- 이덕훈 (2002~2004)
- 황영기 (2004~2007)
- 박해춘 (2007~2008)
- 이종휘 (2008~2011)
- 이순우 (2011~2014)
- 이광구 (2014~2017)
- 손태승 (2017~2020)
- 권광석 (2020~2022)
- 이원덕 (2022~ )